합천 해인사 원당암
해인사 원당암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암자랍니다.
해인사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가까운 산내 암자중의 하나입니다.
원당암 가는 길
다리 건너 우측의 큰 바위가 사리탑입니다.
인파당 사리탑
거대한 자연석 사리탑입니다.
인파당 스님은 조선 개화기 시대 스님으로 백련암에 주석하시다 지난 1846년, 열반에 드신 큰스님이다.
평소 도덕이 고매하고 학문과 시에 능통하시어 생존시, 많은 스님들로부터 백낙천의 후신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던 분으로
공부 또한 깊어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해인사에서 나신 도인 중 한분이라 존경받고 있다.
스님이 입적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모여 다비식을 치뤘다.
살아계시면서도 이미 깨달음이 깊은 도인으로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주신 터라
제자 스님들은 다비식 후에 보여질 인파스님의 사리에 대해 만만치 않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다비한 자리를 아무리 뒤져도 사리는 한 과도 나오질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큰스님들에 대한 평가가 입적 후 남기신 사리의 수와 빛을 발하는 정도 등 눈에 보여지는 것들로 인해 다시 한번 재론되는 바,
스님을 모셨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니었다.
도인 스님의 다비식이었고 잔뜩 기대를 갖고 치러낸 다비식이건만 사리 하나 나오질 않았으니 제자들의 허탈감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제자들이 모여 그간의 스님 행장을 놓고 갑론을박 서로의 잣대를 들이대며
돌아가신 큰스님에 대한 평가를 놓고 시비분별심에 빠져 있을 즈음,
다비식이 있었던 마당에 오색 빛 한줄기가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놀란 제자들이 그 빛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바로 지금의 자리인 원당암 근처 큰 바위 위였다.
그 상황이 하도 괴이하여 바위를 올라가보니 그곳에 인파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
비로소 제자들은 사리가 있네 없네 하며 일시적이나마 눈 앞에 보여지는 것에 빠져 마음을 혼란시켰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돌아가시면서까지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고자 다시 사리로 모습을 나타내시어
분별심을 없게 해주신 스승의 제자 사랑과
생존시의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 다시 조용한 자연으로 돌아가 흔적없이 바람처럼 묻히고자 했던
도인 스님의 깊은 뜻을 기리고자 제자들은 그 자리 그대로인 큰 바위 위에 구멍을 파고 스승의 사리를 모셨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10여년 전, 인파 도인의 자연과 더불어 하나는 삶에 대한 큰 가르침이 흐른 세월만큼 희미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혜암대종사가 비로서 스님의 이름 한 자를 새겨 다시 흔적을 남기시니
공부가 모자란 후대는 다시 한번 인파당 스님의 큰 뜻을 새기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대로인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인파대사의 마음에 반하는 빚을 지었으니
스승을 팔아 공부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욕심인 바, 후대가 어렵게 빚을 진 그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월간 해인 중에서...
다리 건너 오르막
거대한 나무가 사천왕을 대신 하나요? _()_
이정표
심검당
보광전 앞의 다층석탑과 석등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석등은 희귀한 예라고 하네요.
보물 제518호
보광전
심우당
수조
원당암 전경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대종사의 법어중에서...
미소굴
혜암대종사가 수행하시던 곳입니다.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신 장소이기도 하답니다.
달마선원
선불장이란 편액이 걸려있네요.
재가불자들도 출가승려와 같이 참선수행을 할 수 있는 곳이라 합니다.
원당암 안내문
운봉교
안내문에 따르면 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을 하여 가야산의 웅묘한 정기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가야산 최고의 전망대라 합니다.
미소굴 오르는 계단
폐기와와 콘크리트, 나무로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염화실
원당
무설설(無說說)
말없이 말을 하다.